구 일본해군 중위 岩本徹三(이와모토 테츠조)는 유명한 전투기 조종사로서 비공인 202기라는 경이로운 기록의 슈퍼에이스 입니다. 본서 零戦撃墜王은 岩本중위의 자서전으로서 그는 이 책에 중일전쟁에서의 첫 실전참가 부터 종전까지의 스스로 보고 느꼈던 전쟁을 기록하였습니다. 양성훈련을 마치고 佐伯(사이키)항공대 및 大村(오무라)항공대에서의 실전연습과정을 거쳐 중일전쟁이 한창인 상해로 배치됩니다. (이 때 96식 전투기를 타고 이동을 하는군요. 제주도에서 연료 공급을 받았다는 내용이 보입니다.) 첫 전투에서 무려 4기 격추 1기 불확실 격추라는 엄청난 전과를 올리면서 전투기 조종에의 천재성을 발휘하여 격추기록을 계속 쌓아갑니다. 중일전쟁 참전을 마친 그는 기종전환훈련을 거쳐 항공모함 瑞鶴(즈이카쿠) 항공대에 배치됩니다. 신조함 瑞鶴와 그와함께 창설된 제5항공대의 미숙한 자원들 속에서 그는 실전경험을 가진 베테랑으로서 부대의 전투능력 강화를 위해 노력합니다. 전투준비가 끝난 기동부대가 향한 곳은 다름아닌 "진주만" 그는 이날 진주만 공격대가 아닌 항공모함 엄호부대로서 전투에는 직접 참가하지 않았으며, 이 후 수개월간 그는 격추전과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진주만 작전이 끝나고 인도양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동안 강행정찰을 나온 영국군의 비행정 1기를 격추하여 대전 첫 전과를 올립니다. 이 시기는 일본 해군을 가로막을 자가 아무도 없었던 시기였지요. 인도양 작전 기간 중 일본 해군 기동부대는 영국의 동양함대를 거의 괴멸시키고 맙니다. 실전 경험과 많은 적기를 격추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그는 이 기간 중 거의 대부분을 항공모함 직할 엄호 임무가 부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통신망을 통해 들려오는 아군의 전과 (항공모함 허미즈, 프린스 오브 웨일즈, 리펄즈 외) 통보를 들으며 안타까워 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일본 해군의 봄날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해전사상 처음으로 벌어진 항공모함 기동부대간의 대결인 산호해 해전. 일본군과 미군은 필사의 노력으로 먼저 적을 발견하려고 노력하였고, 거의 동시에 서로의 위치를 파악하여 공격기를 발진시킵니다. 역시 항공모함 직할 엄호임무를 맡은 그는 아군 공격부대를 전송한 후 조만간 내습할 미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다수의 미군 항공기가 공격해 왔고, 기량이 미숙한 이들은 항공모함 엄호부대에 의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岩本중위역시 수대의 전투기와 폭격, 뇌격기를 격추하면서 모함을 완벽하게 방어하였습니다. 동행중인 항공모함 翔鶴(쇼카쿠)는 폭탄 1발이 갑판에 작렬하여 잠시 전투불능이 되었다고 하는군요. 翔鶴는 이후로도 잦은 피해를 입어, 수 많은 작전에 참가하고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던 瑞鶴와 늘 비교되었다고 합니다. 전투가 끝나고 미군 항공모함의 격침 소식에 사기마저 드높아진 부대. 저자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공격대의 귀환을 기다리며 임무를 속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공격대. 그러나 도착한 공격대를 보고 모두가 놀랐습니다. 공격에 참가한 공격기의 반 수 이상이 돌아오지 못했던 것 입니다. 그 동안의 승리에 도취하였던 일동은 자신들의 상대가 만만하지 않으며, 이러한 피해가 계속 될 경우 자신들이 견디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북방작전 참가를 위해 알류산 열도에서 작전 중 실시된 미드웨이 공략작전이 실패하고, 기동부대가 재편되는 과정동안 그는 알류산 열도에 머무르며 키스카등에서 활약하였습니다. 잠시 귀국 후 그가 향한 곳은 최일선이자 격전장인 라바울. 그는 이곳에서 라바울 항공대의 최후의 일인으로서 이 곳에서만 100여기의 격추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화려했던 라바울 항공대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부대원들과 함께 30여기 남짓한 전투기로 매일같이 수백대의 미군기와 싸워 아군의 피해 없이 수십기의 미군기를 격추하면서 라바울 지역의 제공권을 지켜냅니다. 중과부적. 그의 활약은 어차피 전국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트럭섬 대공습으로 일본군이 엄청난 피해를 입은 후 트럭섬 방어를 위해 라바울의 204비행대는 트럭섬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것이 라바울 항공대의 최후였습니다. 트럭섬에서도 맹활약을 펼친 그였으나 전력은 계속 소모되었고, 보급을담당하고 있던 제1항공함대는 그의 부대에게 비행기를 공급하지 않습니다. 대반격을 위해 항공기를 모아두기 위함이었지요. 그러한 대반격에 대해 지금의 조종사들의 실력으로는 어림없다라는 것을 알고있던 그는 분투를 계속하다가 본토에 가서 항공기를 수령하라는 지시를 받고 본토로 이동합니다. 사이판에 잠시 기착 후 본토에 도착한 그의 일행은 그들이 떠난 직후 사이판에 대한 미군의 대대적인 상륙작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복잡한 절차와 전장을 모르는 관료들과의 불화를 이겨내면서 마침내 비행기를 구했으나, 트럭섬으로 가는 항공로는 미군에 의해 차단되어 트럭섬으로 이동할 방법이 없어집니다. 결국 그는 본토에 남아 훈련교관, 대만 방어작전, 본토방어작전등에 투입되었고, 수 많은 神風(카미카제)특공작전에 대한 엄호기로 참가하였습니다. B29에 대한 자살적인 공격에서도 살아돌아온 그는 결국 岩国의 203비행대에서 종전을 맞아 살아남는 몇 안되는 에이스가 됩니다. 종전 직후 중위로 진급하였으나, 미군정에 의해 공직에서 추방된 후 실직상태로 어려운 생활을 하다가 겨우 방적회사에 취직하여 안정된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약 10여년 동안 전장을 누비며 수많은 위험한 순간에서도 무사히 살아서 돌아온 그는 허무하게도 의사의 오진에 의한 수술 도중 폐혈증으로 1955년 5월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본 서는 그가 일기를 바탕으로 쓴 회상록을 今日の話題社에서 발굴하여 출판하였습니다. 최근 일본군 조종사들의 수기를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통해서 일본군 역시 낙하산을 활용하였고, 무전기를 사용하였으며, 3기편대와 4기편대를 혼합운용했다는 기존에 알려진 사실과는 다른 점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유명한 구미의 조종사와는 달리 일본군 조종사들은 관련자료가 매우 부족하고 객관성에 대한 지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본 서와 같은 간행물 역시 퇴고시에 편집부의 작위적 수정이 가해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어느 선까지가 그것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네요. (또한 국내에서는 일본군에 대하여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영향을 주었을 수 있습니다.) 岩本중위의 격추기록 역시 공인격추기록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문헌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50~ 87기) 일본군의 산정시스템과 관리시스템이 전반적으로 열악하였기 때문에 확인되기는 어려우나 그가 대단한 전투기 조종사이며 자신의 조국을 위해 헌신했던 훌륭한 군인이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겠지요. ![]() 원제 : 零戦撃墜王 부제 : 空戦八年の記録 초판발행 : 1962년 7월 - 今日の話題社 1994년 6월 15일 - 光人社 저자 : 岩本徹三 발행처 : 光人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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